듣기 편한 노래는 아니다. 그럴 의도는 애초부터 없었음도 짐작할 수 있다. 사운드와 보컬의 심한 괴리감을 느꼈다. 여타의 평가들을 따라서, 좋은 노래라고 평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김준수를 향한 비난은 곡 자체를 넘어 성별에 대한 혐오까지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주관적인 감정을 객관적인 평가로 어설프게 치장을 하려니, 대가리가 텅텅 빈 일부 한국 여성들의 수준으로는 곡에 대한 평가가 아닌 가수를 향한 비난에 쉽게 치우치는 것이다.
주된 비난의 이유야 곡 자체가 주는 불쾌감 때문이기도 하겠으나, 가사를 여성이 썼거나, 혹은 여성이 이 노래를 불렀으면, 댓글창의 내용도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남성이, 여성의 신체를 묘사를 하려니, 남성혐오사상에 물든 일부 한국 여성들에게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인 여성의 신체를, 여성보다 열등한 남성이 손을 대었다는, 그것도, 자신들의 기분과 대치되는 묘사를 하였다는 것이 마치 종교에서나 내세울 법한 원죄와 같이 느껴졌을 것이다. 혹은 정작 자신들이 남성에 대해 가지는 심리를 그저 성별만 바꾼 정도의 가사가 마치 거울처럼 느껴져서, 제 갈려버린 와꾸를 보는 듯한 데 대한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였거나.
그래서 비난의 촉발은 곡에서 시작되었지만, 끝은 항상 남성혐오로 끝난다. 남성기를 어떻게 하겠다던가, 성범죄 사건과 엮거나, 가수에게 편협한 이미지를 씌우는 점은 이들의 남성혐오의식이 치유불가능한 수준으로 치달았음을 명백하게 드러내고 있다.
가수가 마냥 듣기 좋은 노래를 만들 수는 없고, 충분히 비난을 받을 만한 노래 또한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불쾌함을 저급함이라 포장하여 가수를 비난하는 용도로 쓰는 것. 항상 문제에 대해서 객관적인 검토보다 감정적인 대응과 도의적 책임의 전가로만 일관하는 좌파 진영의 전형적인 공격방식의 이면에는 페미니즘과 남성혐오사상이 짙게 깔려 있다. 저급한 건 노래가 아니라, 정도 이상으로 가수를 비난하는 이들이다.대중들의 가수들의 마음을 어찌 알까. 본인들이 당하는 건 싫어하면서 마치 창작자들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양 궁예질을 하는 그 수준으로는 가사의 질을 논할 자격도 없어야 할 것이다. 유치원생에게 인수분해를 맡기는 식이다.


